[펌]=민주노조운동의 운명, 아래로부터의 결단으로 개척하자!

전철연 | 2005.04.25 23:30 | 조회 6622


민주노조운동의 운명, 아래로부터의 결단으로 개척하자!



최근의 노동운동을 특징짓는 양상은 낡은 것의 붕괴와 새로운 것의 탄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부분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과정은 마치 겨울의 냉기와 봄의 따사로움이 함께 교차하는 환절기처럼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낡은 것의 붕괴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봄의 길목에서 수시로 방문하는 꽃샘 추위를 보면서 “아직도 겨울이다. 겨울은 계속될 것이다”는 공포스런 목소리를 토해낸다. 그러나 새로운 것의 탄생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꽃샘 추위를 뚫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점차 확산되는 봄 기운을 느끼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어떤 추위도 이 봄을 막지 못할 것이다”는 희망찬 환호를 지르고 있다.

객관적 상황은 상당히 분명하다. 하나의 시대에 우리는 결별을 고하고 있다. 선진노동자들의 정치적 운동(여러 정치그룹들의 등장과 정열적인 투쟁)으로부터 출발된 이 시대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개화한 뒤, 점차 쇠락기를 거쳐 지금은 조합주의, 관료주의, 개량주의 정당 등의 낙엽들만 남기면서 저물어가고 있다. 그러나 두텁게 덮여 있는 낙엽층을 뚫고 새롭게 올라오고 있는 싹들 또한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싹들이다. 이제 우리는 이 싹들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운동의 새로운 순환기를 열어야 하는 과업과 마주치고 있다. 낡은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전환기의 핵심적 임무다. 4월 투쟁 또한 이 과업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개별 전투를 배치하듯이, 우리는 이 과업의 성공적 전진을 위해 4월 투쟁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붕괴하고 있는 낡은 것들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관료주의자들은 노동조합 속에서 강력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개량주의 당도 강력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을 낙엽이라고 간단히 치부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만 문제를 설정한다면 이런 문제제기는 완전히 타당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노동운동”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음을, 그들의 형편없는 ‘운동적 실체’가 분명히 폭로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자들만이 아니라 은폐된 기회주의자들도 최근 투쟁하는 노동조합들 앞에서 그 실체가 극명하게 폭로되기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거듭되는 배신에 의해 적나라하게 그 볼품없는 실체가 폭로되고 있는 현자 민투위 집행부, 그리고 금속연맹 선거에서 노골적인 기회주의자들과 ‘통합 후보’를 내세우고 민투위 집행부의 배신을 감싸고 보호함으로써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의 힘’을 예로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동시에 이들 기회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중적 부위는 계속 하강하고 있다. 가장 단적인 예는 민주노총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들의 다수들이다. 지도자들이 아직 활력을 잃지 않았던 과거의 시기에는 놀랄 만큼 거대한 역동성을 보여주었던 이 노동조합들은 지도자들의 우향우에 맞서 거듭 저항했지만 결국 기회주의로 전락한 지도자들과 함께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 불행히도 이들 노동조합 ‘내부로만’ 보자면 상황을 근본적으로 역전시킬 계기는 당분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 노동조합들의 다수 조합원들은 40대와 50대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들은 명백히 기회주의자로 전락한 지도자들과 여전히 뗄 수 없을 만큼 깊숙이 결합되어 있다.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들 조합원들이 87년부터 쟁취하고 획득해온 모든 성과들은 현재의 기회주의 지도자들에 대한 좋은 기억과 상당 부분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이들은 ‘무언가 과거와는 다르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할지라도, 기회주의 지도자들에게 여전히 감사함을 느끼며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87년 이래 약 10년간 쟁취했던 것들을 그럭저럭 보호하는 것만으로 지금 당장은 만족하고 있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그만큼 당시에 이들은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쟁취했던 것이다. 이 성과는 중소기업처럼 자본의 지불능력이 협소한 곳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박탈당했지만, 대기업처럼 자본의 지불능력이 아직 건재하고 노동조합의 힘이 강력했던 곳에서는 아주 서서히 허물어져가고 있다. 지도자들의 노쇠화 및 민주노조운동의 전반적 하강이 결합되자,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들은 ‘활력있는 전진과 쟁취’보다는 이미 획득한 ‘자기’ 성과들을 ‘방어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성립된 이런 ‘보수성’은 자연스럽게 단사주의와 밀접히 결합되게 되었고, 90년대 내내 ‘비정규직 제도’의 전면적인 확산을 용인하게 된 본질적 토대 중의 하나였다. ‘쟁취’에 나섰던 과거의 지도자들은 재빨리 ‘방어’적인 수세적 차원으로 이동했고, 스스로 ‘실리주의’로 표방되는 ‘지키기 운동’, ‘대기업 단사주의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총연맹과 산별연맹은 이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그럼에도 2000년도 초까지는 이 쇠퇴해가는 낡은 것들은 그럭저럭 자신을 ‘노동운동’이란 모양새로 포장할 수는 있었다. 자본과 정부의 공격이 초래한 ‘민주노조의 연이은 붕괴’는 위기감을 조장하고 과거의 강력한 운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주기는 했다. 그럼에도 “과거의 지도자들만이 그나마 저항선을 칠 수 있고, 그들은 힘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투쟁의지는 어느 정도 있다”는 대중적 정서가 계속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붕괴를 계속 감추는 것은 이제 도저히 불가능해지고 있다. 낡은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노동운동 “내부”에서 대중적으로 제기되는 시점에 이르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것의 탄생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해야 할 부분은 바로 비정규직 투쟁, 그 중 특히 대기업 비정규직 투쟁이다. 이 투쟁은 그 전투성, 지속성, 치열함, 연대성에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새로운 투쟁이라 마땅히 불러야 한다. 물론 그것이 이 투쟁들이 그 규모는 제외하더라도, 그 양상에서라도 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나섰던 노동조합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맹아’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맹아는 87년 투쟁 및 그 이전의 투쟁들을 연상시킬 정도로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음이 분명하다. 90년대 초반 이후 노동조합운동의 거듭되는 퇴행을 핑계로 “전투적 노동운동은 죽었다. 새로운 기회주의적 노동운동을 시작하자”고 외쳐온 자들은 비정규직 투쟁을 보면서 “87년이 다시 오고 있다”는 점을 느끼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새로운 투쟁이 갖는 장점은 우선 아직 늙고 지치지 않은 지도자들, 대중들에 의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대중들은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차원의 투쟁을 전개할 수 없다. 이들은 잃을 만한 것이 거의 없고,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투쟁할 이유가 없다. 이들은 단사주의에 갇히기가 힘들다. 온갖 제도적, 법적 억압에 의해 투쟁이 봉쇄되곤 하는 이들은 단사를 뛰어넘는 전국적 연대를 통해서만 비로소 진정한 합법성을 쟁취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은 젊다. 이들은 민주노총의 늙고 노쇠한 지도자들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들은 운동을 개시하면서 노쇠한 지도자들의 도움을 얻기는커녕 이 지도자들의 형편없는 실체를 눈에 치이도록 보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감사하거나 결속감을 느끼기는커녕 환멸을 느끼고 있다. 패배감이나 낡은 관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젊은 지도자들도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목적의식적인 젊은 활동가들이 투신하면서 새롭게 운동을 열어가는 주요한 공간도 바로 이 비정규직 투쟁이다. 늙고 노쇠한 지도자들이 대담하게 투쟁을 밀어나가지도 않고 이 투쟁에 대해 헌신적으로 지원하지도 않음으로써 지도력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 이 젊은 활동가들은 전면적인 헌신으로 점차 지도력을 형성해가고 있다. 물론 목적의식적인 투신은 아직 많지 않고, 특히 비정규직 투쟁의 성장 추세에 비한다면 턱없이 모자라다. 하지만 다음은 분명하다. 만약 젊은 세대의 활력있는 전투적 활동가들이 새롭게 대중적 지도력을 형성해가고 있는 영역이 있다면, 그곳은 단연코 비정규직 투쟁이다.

이런 이유들이 한 데 어우러지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혁신의 선발주자로 밀어올리고 있다. 초기에 이들은 민주노총의 붕괴하고 있는 낡은 것들에게 어느 정도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투쟁의 경험이 축적됨으로써 낡은 것들로부터 얻을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을 자각하면서, 또한 느리지만 점차 대중적인 기초를 확대시켜나감으로써 자신감이 확대되면서 비정규직 투쟁은 낡은 것들의 형편없는 실체를 폭로하는 밝은 등대처럼 작용하고 있다. 모든 사업장들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등장과 나란히 조합주의, 단사주의, 실리주의 지도자들의 실체가 여실히 폭로되고 있다. 낡고 지쳐버린 것들에 대해 “당신들은 이제 운동적으로 끝났소!”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해버리고, 이렇게 낙인찍히기를 피하고자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결단하시오!”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 노조들이 쟁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 엄호해야 할 당위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힘이 점차 탄생해가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새로운 힘이 아직 어느 정도라도 자리 잡지 못했을 때는 민주노총의 노쇠한 흐름들은 ‘운동 세력’으로 자신을 그럭저럭 포장할 수는 있었다. 단적으로 “대사업장의 주5일제와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근로자 파견제 확대와 생리휴가 폐지)”을 맞바꿔치기 했던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이 새로운 힘의 비판은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낡은 것들은 그럭저럭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투쟁이 제1세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대형을 갖추고(가령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 대중적 투쟁을 점차 강화시켜 나가자(가령 현자비정규직노조)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비정규직 주체들의 능동적인 개입은 이제껏 단사적 차원이든 민주노총 차원이든 계급타협의 물질적 기초였던 “비정규직 제도”를 유지할 명분을 기회주의 관료들로부터 박탈하고 있다. 30-80%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안전판으로 삼아 대기업 자본과 대기업 노동조합 관료층은 밀월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기피직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대자본이 특별이윤을 쥐어짜는 것을 방관한 대가로 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유지 혹은 약간 개선하면서, 나아가서 경기변동시 비정규직들의 대량 해고를 고용의 안전판으로 삼으면서 대기업 노조 관료들은 타협을 지속해왔다. 민주노총 관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제도적 개악을 묵인하면서 총자본과 정부로부터 합법성과 몇 가지 사소한 개량(가령 주5일제)을 얻어왔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이 관료들은 ‘립서비스’를 한동안 계속할 수 있었다. 항의하고 저항하면서 폭로할 비정규직 주체가 아직 전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런 시절은 지나가고 있다. 기업별 차원에서든, 민주노총 차원에서든 새롭게 태동하고 끈질기게 대중적 뿌리를 확대하면서 초기 활동가 층을 배출해내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은 이제 ‘립서비스’에 저항하면서 ‘계급타협’을 폭로하고 있다. 이제 썩어빠진 낡은 실체를 폭로당하지 않고서도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삼아서 계급타협을 계속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비정규직 주체들이 그것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계급타협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낡은 관료층은 ‘노동운동’ 세력으로서의 포장을 벗어던져야만 한다. 현중 탁학수 집행부처럼 노골적인 방식이든, 현자 이상욱 집행부처럼 덜 노골적인 방식이든 비정규직 주체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것은 이제 불가피해졌다.

이번 4월 투쟁의 특징도 이상에 대한 고려 없이는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 작년 겨울 국회 크레인 점거를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의 주체적인 투쟁은 ‘비정규직 법안 개악’을 민주노총이 그냥 묵과할 수 없게 만든 쐐기였다. 나아가서 현자 비정규직 투쟁이나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 투쟁,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 투쟁 등 비정규직 대중 투쟁이 완강하게 계속되고 있다. 이 투쟁들은 만일 민주노총 지도부와 대기업 노조 지도부가 비정규직 법안 개악을 저지하고, 나아가서 ‘비정규직 권리입법 쟁취투쟁’을 전면화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당신들은 더 이상 노동운동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들은 “붕괴하고 있는 낡은 것들”에게 “붕괴했소”라고 냉정하게 규정해버릴 수 있는 지위에는 이미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관료 집단을 겨누는 가장 강력하고도 (이번 4월 투쟁 국면에서는) 거의 유일한 비수다.


가세하고 있는 새로운 물결

올해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소기업 노동자 투쟁이다. 효성, 태광 등을 휩쓸고 지나갔던 화섬업종 중소기업 투쟁은 1라운드 공방전에서 자본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금강화섬, 코오롱 등 구미지역 투쟁으로 2라운드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 노동자 투쟁의 주력부분인 금속 중소기업노조 투쟁, 특히 이 중핵인 자동차 중소기업노조 투쟁이 바야흐로 개화를 예고하고 있다.

모듈 생산을 중심축으로 자동차 업종 중소기업의 대대적인 재편, 중국에서 자동차 부품 40% 수입 등으로 단적으로 요약되는 자동차 업종 구조조정은 자동차 중소기업 노동조합들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민주노조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던 이 중소기업 노동조합들이 이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흩어져 있던 중소기업 부품사들을 모비스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하고, 3, 4개 이상으로 분산되어 있던 1, 2차 부품 밴드들을 1-2개로 통폐합하며, 단순 부품들은 중국산으로 대체함으로써 영세 중소기업 부품사들을 정리하는 계획으로 요약되는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은 바야흐로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민주노조들을 약화시키고 해체하려는 간악한 시도가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울산 대덕사 폐업은 그 단적인 사례다.

이러한 객관적 상황은 최근 수년 동안 “무늬만 파업”에만 갇혀 있던 자동차 부품사 노조들을 강력하게 자극하고 있다. 그 동안 계급적 연대 전선이 붕괴되면서 원청사 노조들과의 연대의 고리가 끊기고, 부품사 연대 파업도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자동차 부품사 노조들은 실제적이고 위력적인 파업의 전통과 분리된 ‘형식적인 파업’으로 거의 일관해왔다. 부품 공급 차질로 원청 조립공장이 멈췄을 때, 닥쳐오는 ‘손배, 고소 고발’ 나아가서 ‘원청의 하청선 변경’(이는 곧 폐업이다)의 위협 앞에서 중소기업 부품사 노조들은 주춤거렸다. 대개의 파업들은 원청 납기 일자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마디로 원청 자본과 하청 자본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은 파업을 김빠진 맥주처럼 만들었고, 노동조합은 점차 온순해졌다.

길들어지지 않았던 일부 신생 노조들은 저항했지만 연대 투쟁의 부재로 진압되었다. 가령 세원테크 노동조합은 이런 관행을 뚫고 몇년만에 파업다운 파업, 즉 원청의 라인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실질적인 파업을 전개했지만 ‘댐의 구멍이 뚫리는 것’을 두려워한 자본의 무차별한 공격 앞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몇몇 신생 노조들은 과감하게 저항하다가 결국 폐업을 당했고, 일부는 폐업 위협 앞에 민주노조를 포기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흐름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 전노협 운동의 주력이었던 자동차 부품사 노조들 중 한편으로는 그 전통을 계승하면서 강하게 투쟁했던 노조들,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의 생존과 자본의 지불 능력이 양립할 수 없었던 영세 사업장들의 노조들은 자본과 정부의 십자포화를 집중적으로 맞으면서 붕괴되어 왔다. 1차 밴드를 중심으로 그나마 자본의 지불능력이 있었던 사업장의 노조들만이 ‘위력없는 흉내내기 파업과 노조의 제한적 생존’을 그럭저럭 맞바꾸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제 지속되기 힘들다. 자동차 산업의 격화되는 전지구적 경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강력한 투쟁없이 그냥 지켜본다면, 부품사들은 하나씩 모비스로 혹은 다른 사업장으로 통폐합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대응도 조직하지 못하는 노조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그냥 앉아 있다면 대덕사 노조를 덮친 불행은 곧 우리를 덮칠 것이다’가 현재 부품사 노조 조합원들의 판단이다. 또한 중국산 부품 수입으로 다수 2-3차 밴드 사업장 민주노조들은 사실상 폐업 통지서를 받아야만 한다. 물론 2-3차 밴드 조직율은 현재에는 대단히 낮다. 이 업체들은 대부분 미조직 사업장일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사 민주노조들의 투쟁이 활발해진다면, 그것을 지켜본 이 미조직 노동자들은 그냥 앉아서 죽을 바에는 투쟁을 통해 불행한 운명에 결사적으로 저항하고자 활발하게 나설 것이다. 이는 자동차 업종에서 새로운 민주노조들과 투쟁들이 활발하게 탄생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상의 분석은 재작년 세원테크 투쟁 때와는 상당히 달라진 금속노조운동의 상황을 보여준다. 당시에 연대 투쟁에 나선 자동차 부품사 노조 조합원들의 심리는 ‘투쟁하는 타 사업장 동료들에 대한 소박한 연대감’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들은 ‘앞으로 전면적인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투쟁하려면 연대투쟁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점차 키워나가고 있다. 바로 이런 심리상태가 올해 금속노조의 연대 투쟁을 아래로부터 떠받치고 있다. 충북, 충남, 울산, 마창 등에서 부품사 노조들을 중심으로 금속노조의 연대투쟁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고, 투쟁의 기세와 양상, 분위기도 점차 전투화되고 있다.

물론 이 투쟁을 조직하는 금속노조 관료들의 심리상태는 ‘산별 교섭기구 안착’에 꽉 붙잡혀 있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래로부터의 분위기는 다소간 분명해지고 있다. 절박한 상황을 감지하고 점차 투쟁의 머리띠를 묶어야 한다는 확신을 발전시키고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연대투쟁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집회를 전투적 양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아래로부터 투쟁 전선을 열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부품사들을 중심으로, 미조직 사업장의 새로운 조직화 흐름이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 노동자 투쟁의 다른 한 축인 화섬업체 노동자 투쟁도 만약 전반적인 투쟁 기운이 성장한다면, 붕괴된 전선을 추스르면서 다시 확대 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비정규직 투쟁과 나란히 중소기업 노동자 투쟁이 새로운 것의 주축으로 본격 가세하기 시작할 것임을 예고한다. 비정규직 투쟁이 여러 고비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계속 대중화되는 것과 나란히 중소기업 투쟁은 금속노조 투쟁을 중심으로 그리고 구조조정(그것도 폐업의 위험)에 맞선 부품사 신생노조들의 투쟁을 중심으로 새롭게 부활할 것이다. 이 두 흐름은 당분간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두 기둥으로 우뚝 서면서 전체 노동운동을 선도할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비정규직 투쟁이, 중소기업에서는 자동차 업종 부품사 노조 투쟁이 운동을 선두에서 재건하면서 결합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에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흐름이 가세할 것이다. 비정규직 분야에서는 건설, 학습지, 화물, 보육교사 등등 수백만에 달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 확산되고, 중소기업 분야에서도 수백만이 포괄된 영세 중소사업장의 투쟁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새로운 분야로 널리 확장되면서 천사백만 노동자들의 구심으로 서는 발판을 마련해가야 한다.

물론 이 새로운 흐름들과 나란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이 가세해야 노동운동은 완전한 혁신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 하지만 당분간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이 대중적 기세로 진군하는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다. 당분간은 이 혁신의 두 흐름과 연대하면서 운동의 물꼬를 터나가는 정규직의 소수 투사들만이 대기업 정규직 운동의 전선을 홀로 이끌어나갈 것이다. 이후 한편으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대중적 진출이 본격화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 노조의 안정성까지 위협할 만큼의 자본주의 위기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 속에서 혁신의 대중적 물결이 부상함으로써 거대한 새로운 운동이 우렁찬 탄생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명실상부한 총파업을 향하여!

최근 몇 년 동안 ‘총파업’은 마치 연례 행사처럼 선언되었고, 실제로 집행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총파업의 위력을 느끼지 못할 만큼, 소위 총파업은 최근 유명무실한 껍데기로 전락했다. 민주노총의 관료층에 의해 계산된 이러저러한 파업참가 수치는 참가한 노동자 자신들도 신빙성을 믿지 못할 만큼 부실한 것이었다. 파업은 선언일 뿐, 약동하는 대중적 투쟁의 표현은 결코 아니었다. 가장 부실한 지점은 총파업이 공장과 기업, 지하철을 멈추는 강력한 형태로 거의 표출되지 않았고, 또한 파업에 ‘질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는 결연함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작업을 멈추는 파업에 들어가는 경우에도, 파업 참가자들의 일부만이 파업집회 혹은 지역집회에 참가하는 맥빠진 양상이 연속해서 나타났다.

이것을 총파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명실상부한 총파업이 전혀 아니다. 단지 총파업을 약간 흉내내는 캠페인 정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총 관료들의 선언 속에서만 위력적일 뿐 적들의 간담을 전혀 서늘케 할 수 없다. 이런 총파업은 노동조합 관료층의 협상력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할 뿐, 노동자의 전투학교로서의 총파업다운 면모를 획득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명실상부한 총파업을 위해 전진해야지, 껍데기 신기루 총파업에 휘둘리면서 우왕좌왕하고 실망하는 악순환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명실상부한 총파업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위로부터의 선언을 통해서는 탄생할 수 없다. 명실상부한 총파업은 아래로부터 거세게 터져 나오는 대중적 투쟁의 강력한 물줄기를 통해서만 길이 닦이고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제 아무리 뛰어나고 강력한 지도자들도 총파업을 선언을 통해 위로부터 만들어낼 수 없다. 총파업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다가 아무 때나 필요하면 꺼내 쓰는 주머니칼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선포에 의해 총파업이 개시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하나의 신호탄 역할 이상은 아니다. 총파업은 오직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노동대중의 에너지와 자신감, 연대성, 전투성에 의해서만 탄생가능하다. 그러므로 총파업은 그 이전에 상당 기간 진행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연대의 대대적인 확산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할 수 있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위로부터 선포되는 총파업은 ‘전쟁’이 아니라 ‘흉내내기 전쟁’ 혹은 ‘멀리서 간헐적인 함포 사격을 하는 하나의 위력시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총파업은 이제껏 노동운동에 직접 조직되지 않았던 방대한 노동대중을 자기 주위에 결집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총파업이 노동운동에 거대한 의의를 갖는 것, 그리고 총파업이 노동해방을 향한 본격적인 출정의 시작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총파업은 평상시의 평화로운 시기에는 거의 보이지 않거나 파편적 존재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미조직 대중, 그 중 특히 노동대중의 다수를 구성하는 가난한 하층 노동자들의 각성과 전투성을 대대적으로 끌어내고 이들을 자기 주위로 결집함으로써 비로소 총파업다운 활력과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갖출 수 있다. 총파업을 통해 노동운동의 후발대로 뒤편에 빽빽하게 결집하기 시작하는 이들 가장 가난하고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은 총파업이 노동해방 투쟁으로 성장 발전함에 따라 선두로 치고 올라가면서 어떤 희생도 겁내지 않고 과감하고도 철두철미하게 전투에 임하고 모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강력한 투쟁부대로 조직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총파업이 노동해방투쟁으로 이어지는 가교로서 “대중파업”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다가오는 4월 투쟁의 국면이 이러한 총파업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나아가서 상당 기간 동안 우리가 이러한 총파업의 가능성을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그럴만한 충분한 예열작업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런 총파업을 밀어붙일 수 있을 만큼 새로운 힘들이 아래로부터 성숙하지 않았으며 운동의 대중적 확산도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4월 투쟁은 이런 총파업을 향해 차곡차곡 힘을 모아나가는 출발점 중의 하나로 간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의의에 입각해 우리는 4월 투쟁에 능동적이고도 치밀하게 임할 수 있다. 동시에 이것은 관료층의 총파업 선언을 목을 빼고 학수고대하다, 총파업이 맥없이 끝나거나 심지어는 철회되기까지 하는 상황 앞에서 거듭 실망하면서 주저앉고 마는 불행한 일을 막아낼 것이다. 불가능한 것에 기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가능한 것들을 향해 차분히 실천을 전개하고, 이로부터 더 대담하고 더 본격적인 다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가야할 길도 바로 그 길이다.


새로운 힘의 성장을 향해 4월 국면을 자신감 있게 맞이하자!

명실상부한 총파업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향한 토대를 닦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노총 관료층(이들은 총연맹 집행부, 민주노총 대대, 산별 연맹, 대기업 노조 다수 집행부 등 대부분의 상층 단위에 빽빽하게 포진해 있다)의 동향, 그들의 총파업 선포 등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수동적인 자세로 앉아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새로운 힘이 성장하는 데서 전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은 무기 정도는 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총파업이 위로부터 선언되더라도, (수년간의 경험 속에서 명백히 드러났지만) 그런 박제화된 총파업을 통해 새로운 힘들이 거대한 기회를 얻고 전진했던 경험은 불행히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힘들의 지속적인 성장은 당장에는 대단히 작더라도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활력과 각성, 단호한 투쟁의지에 의해 촉발되고 그것에 의해 지탱되는 하나하나의 (당장에는) 자그마한 투쟁들을 통해서 이룩되어왔다.

물론 이용의 필요성이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거꾸로 우리는 이용할 수 있어야만 하며, 그것을 위해 ‘기예, 기술’까지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의 확대를 위해서 좌우 노조 관료들의 대립까지도, 조합원 대중들을 기만하기 위한 그들의 쇼맨십까지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그런 점에서의 ‘이용’이지, 세련된 기술로 거대한 관료체계의 상층부를 자극함으로써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착각하는 한탕주의자들의 ‘이용’은 절대 아니어야 한다. 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작품은 ‘상층 관료 체계’를 이용한 기술로부터는 절대 탄생할 수 없다.

위대한 작품은 오직 노동대중 속에서 아래로부터 전개하는 매일의 실천들, 즉 선진활동가들을 조직하고 대중의 선진층을 향해 노동운동의 정신과 대의를 끈기있게 나르며 흩어져 있는 대중들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끈기있게 조직하며 후진층의 자신감을 고양시키고 단사를 뛰어넘는 연대의 망을 대중적으로 짜나가는 치열한 실천들을 통해서만 탄생한다. 이것은 무미건조하지만 대단한 인내와 성실성, 치열함을 요구한다. 이것은 한탕주의 대신 매일 매일 대중들 속에서 전개하는 침착한 실천들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4월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우선적인 실천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관료들의 캠페인이 아니라 자신의 투쟁력과 연대성, 의식성에 확고히 의지해서 작더라도 견고한 발걸음을 내딛고 주도성을 가지고 상황에 개입하도록 적극 돕는 것이다. 당면의 투쟁들이 더욱 견결하게 전개되게 해야 한다. 투쟁사업장들의 아래로부터 연대망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단사별 투쟁들이, 아래로부터 짜여지는 이러저러한 연대망이 4월 투쟁과 자신을 직접 연결시키면서 앞으로 치고나가야 한다. 관료층이 어떤 배신을 저지르는가와 무관하게, 가령 총파업 자체를 철회하거나 1-2일 정도의 총파업 뒤에 ‘퇴각’을 지시하거나 아니면 그럭저럭 며칠 정도 더 총파업을 밀어가다 멈추느냐와 무관하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자기 힘에 의지해서 전선을 밀어나가면서, 그 성과를 자기 내부로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 힘을 바탕으로 이후 투쟁을 더 전면화시켜 나가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이런 투쟁의 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그 숫자가 많지 않더라도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 ‘개악안 완전 폐지, 비정규직 제도 철폐를 향한 보호입법 쟁취’라는 선명한 요구를 전면에 내건 결연한 전술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마치 “87년 골리앗 크레인”의 축소판, 혹은 “85년 구로동맹 파업”의 축소판이라 할 상징적인 투쟁을 비정규직 투쟁에 나서고 있는 대중적 주체들이 조직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관료층의 배신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주체로서 온갖 희생을 감수하고 투쟁할 것”임을 만천하에 선포해야 한다. 이것은 4월의 공방전이 어떻게 마감되느냐와 무관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 힘이 닿는 한 모든 것을 실천했고, 당장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은 투항해서가 아니라 단지 아직 힘이 부족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보호하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의의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이 투쟁이 대중적인 투쟁에 나서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조합들 자신에 의해 자주적으로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여기에 정규직일지라도 투쟁하는 노동조합이 연대의 깃발을 들고 합류할 수 있다면, 그 의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아울러 4월 국면을 맞이해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될 투쟁사업장들의 연대망을 조직적으로 더 안정화시키고, 대중적 연대망으로 더욱 확장하면서, 이후 중요한 고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힘을 대변할 조직적 무기로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업이다.

다음으로 지역별 차원에서 투쟁의 새로운 주역으로 솟구칠 잠재력이 높은 금속 자동차 부품사 노조 투쟁들을 4월 국면을 매개로 계속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총파업이 선언되느냐와 무관하게, 자동차 부품사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이를 반영해 금속 노조 노동자들의 투쟁의지가 점차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노협을 계승하는 중소기업 노조들의 연대투쟁망을 지역별 차원에서 확대시키면서 점차 전국적 연대 전선으로 묶어세우는 적극적인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아가서 이 금속 중소기업 노동자 투쟁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및 화섬업체 노동자 투쟁과 지역별, 업종별, 산업별 차원에서 적극 묶어세움으로써 혁신의 힘을 하나로 융합해나가는 출발점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중소기업 투쟁이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계급 하층을 총파업을 향해 결집시켜 나가는 중요한 고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압도적 다수이고, 대중파업의 가장 중요한 부대인 가난하고 열악한 하층 노동자들의 중심부다. 그렇기에 이들 노동자들의 투쟁의 확대는 다른 무엇보다도 빠르게 다수 노동자 층의 투쟁의지를 촉발하며, 다양한 조직적 결집을 추동하면서 미래의 명실상부한 총파업을 준비해나가는 수단이 아닐 수 없다. 4월 투쟁 국면에서도 우리는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도록, 그들의 요구까지 함께 대변하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적 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자. 민주노총 관료들에 의해 껍데기 총파업이 선언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로부터 우선 탄생하고 있는 이 새로운 힘들의 축적, 그리고 이 새로운 힘들 주위로 대기업 정규직 선진투사들의 엄호 부대를 결합시키면서 관료층을 포위해나가는 작업에 우리는 힘을 집중해야 한다.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지금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교차하는 전환기의 초입부다. 낡은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이 전환기의 핵심적 임무다.”고 주장했다. 물론 낡은 것은 아직 강하고, 새로운 것은 아직 미약하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운동이 조직되어야 하고, 기존의 운동은 명백히 제거되어야 한다면 우리의 임무는 명백하다. “낡은 것의 붕괴에 고통스러워하지 말자. 낡은 것에 매달리고 울부짓지 말자. 낡은 것의 붕괴는 새로운 것의 성장의 거름일 뿐이다. 낡은 것이 썩어가면서 내뿜는 악취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서 거름을 먹고 새로운 싹을 틔우는 새싹의 강인함을 의심하지 말자. 오직 작더라도 새로운 것의 확대 강화에 희망을 걸고 다가오는 시대를 자신감 있게 맞이하자. 4월 투쟁은 그 출발점이다!”

동시에 잊지 말자. 낡은 것의 붕괴와 새로운 것의 성장은 자동적이지 않다. 만약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주체들의 능동적 실천이 없다면, 낡은 것은 부패하기만 할 뿐 거름이 되지 못할 것이고, 새로운 싹들은 성장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땅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 것이다. 심지어는 오물덩이에 감염되어 새싹마저 곧 부패하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이 새싹들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자연발생적 힘에 노동계급적 지도력이라는 요소가 결합되어야 새 싹은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일어나 거목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 이 새로운 것을 끌어나갈 단호한 선진투사들을 양성하자! 이 새로운 것을 인도할 분명한 노선과 사상을 세워내자!

아울러 이 점도 분명해져야 한다. 87년에 본격 탄생해 10년 동안 거대한 잠재력을 보여준 기존의 운동이 이런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이유의 뿌리에는 “쇠퇴기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조합 앞에 사회 혁명으로 전진할 것이냐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 내에 머물 것이냐는 절대 도망칠 수 없는 선택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이 갈림길에서 기존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에 머뭄으로써 결국 협조주의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 협조주의가 지금의 모습을 잉태한 어머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싹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 이 싹들은 그 출발점에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노동해방운동의 깃발 아래 이 싹들을 결집시키는 것’, 그것은 이 싹들이 전환기를 견디어 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노동해방 투사들은 최고의 헌신성과 용기로, 단호한 투쟁성과 연대성으로, 가장 명확한 사상과 노선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두로 우뚝 서야만 하고, 또한 반드시 그렇게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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